김대용 교수의 {이슬람 세계의 이해}
 
이슬람 바로알기 (13 ) 이슬람 세계의 저항, 자원무기화
(01/11/10 12:22:06)
 

자원민족주의 태동, 무기화

제 4차 중동 전으로 드디어 아랍민족주의 슬로건이 자원민족주의로 석유국유화 운동에 성공하고 자원무기화 정책을 표방, 10월 전쟁이 한창이던 아랍산유국을 중심으로한 OPEC는 석유가격 결정 방식을 시장가격이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40%가 비싼 시세를 산유국이 받는 소득세나 로열티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으로 정한다. 10월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73년 10월 초순에 비해 무려 3백50%가 인상된 검은 황금의 시대가 도래하고, 서방산업사회의 지배권과 산유권의 대등한 규형을 노리게 된다.
전세계 원유매장량의 75%이상, 세계자유진영 생산량의 43%를 차지하는 아랍산유국의 주된 고객은 미국임을 상기할 만 하다. 이는 아랍제국국가들이 지난 4반세기 동안 4차례의 전쟁에서 대결했던 이스라엘을 지원, 동조한 서방세력에 대해 아랍민족의 자구책이었다.
이후 석유 부로 축적된 중동 각국은 기간산업 교육시설 산업시설 건설등 자립을 위한 건설 붐이 이루어져 이 건설붐에 편승, 특히 개발도상국가인 한국도 참여해 많은 외화를 벌여들여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1979년 이란에 이슬람 혁명의 불을 피웠다.
이 혁명은 중동의 심장부를 흔든 것으로 종교의 힘, 민중의 힘에 확실한 불꽃이 번진 것이다. 종교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끈 徒手空拳 민중이 최신 미국 병기로 무장한 군대를 격파한 것이다. 미국은 팔레비 왕에게 군사원조를 주고 군의 중추에 미국인 군사고문을 파견하여 이란군의 지휘권을 장악했고 아라비아만 일대의 산유국에 파수병을 지원, 서방 국에 석유공급을 꾀했던 것이며, 이란 이슬람 혁명전에 아라비아만은 흔히[미국의 호수]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어 미국은 혁명이후 미국대사관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하여 체면을 잃는다.
지미 카터는 이 [테헤란악몽]으로 재선에 실패한다.
이란혁명이후 중동지역 국가의 최대의 전환은 이라크의[소련과의 단절],독자적인 아랍민족주의의 재 주창이었다. 이란 혁명전에 이란과 사우디가 미국진영에 힘을 의지하고 있었을 때 양국을 견제하기 위해 소련에 접근한 것이 이라크이며 이라크는 3차 중동전 후에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 중동평화를 방해하는 反외세의 아랍정신의 선구자임을 밝힌다.
특히 이라크는 동서 양대 진영의 대립과 함께 병기체재에서 NATO의 규격 군사장비가 아닌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사규격에 군대를 무장하여 소련에 밀착되어 있었으나 이는 反美만을 위한 친소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팍스 아메리카]화(미국중심의 질서)의 파도에 휩쓸리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슬람혁명이 성공으로 군사대국 이란이 무너지자 이라크는 자동적으로 아라비아만 지역의 최대의 군사대국으로 부상하고 사우디와 경제협정을 맺는다. 이어 소련이나 미국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 아랍자립노선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 소련의 전략기지화
79년 12월 소련이 느닷없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70년대 들어서 미국과 대등한 군사확장을 계속하던 소련은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중동 이슬람세계에 마수를 뻗친 것이다.
이집트 이라크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남예멘과 우호협정을 맺으며 세력을 넓히던 소련이 중동의 교두보를 잃기 시작한 것은 소련침략이 상투적인 우호협력조약의 허구성 때문이었고, 모두 조약을 파기하자 비동맹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유린한 것이다. 이 사태의 반발로 모스크바 올림픽은 반쪽이 되어 버렸다.
한편 소련의 중동전략이 노리는 것은 아라비아만 인도양 홍해 수에즈운하를 잇는 오일로드였고 앞서 살핀 우호협정 국가들은 이른바 소련이 [붉은 낫]전략라인에 주요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빗발치는 세계 여론에 밀려 이후 소련은 어느날 갑자기 철군하였으나 이는 그들이 상투적인 수법[친소괴뢰 정부]를 세우고 난 뒤였고 이슬람 근본주의을 기치로 내건 반 정부군 딸레반이 정권을 잡고 다시 이를 반대하는 북부동맹과 내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번 테러참사 보복전이 있는 것이다.
중동이슬람세계는 특히 열강들이 물려준 분단이란 현실, 식민지 압력속에 해방 독립 국토 수복, 같은 민족이 총을 겨루는 비정한 역사반복의 과정을 겪은 아랍민족의 역사는 지구촌 마지막 분단 국가인 우리 나라의 역사와도 맥이 통한 이번 대태러 참사는 걸프전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공습 코소보 소말리아 레바논등지에서 군사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미국에 대한 이슬람의 저항이며 극단적 반응으로서의 태러라는 행동 일 수 있다.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소련과 체첸, 소말리아, 수단, 레바논의 내전, 프랑스와 알제리 이슬람 세력간의 갈등,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카슈미르 갈등 그리고 걸프전의 배경에는 바로 이슬람세력과 미국,서구 사이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으며.왜 이제 이런 사건이 폭팔하는가라는 시제적인 물음에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힘의 외교 논리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등이 그만 마찰을 일으킨것이다. 부시 부자는 이슬람 세계와 10년전 걸프전(대 이라크) 이번 아프가니스탄전으로 악연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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