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용 교수의 {이슬람 세계의 이해}
 
이슬람 바로알기 (10) 왜 세계의 화약고인가?. 갈등의 배경들
(01/11/09 17:43:36)
 


아랍인과 유태인은 팔레스타인 을 중심으로 살아온 유일신을 신앙하는 성서의 민족이다 이들이 성서인 구약과 꾸란에도 두 민족은 이브라힘(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삼는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태기가 없어 종의 신분인 하갈과 혼인 이스마엘을 낳고 이후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는다. 이스마엘은 아랍의 조상이 되어 후대 무함맏이 태어나고 이삭은 유대민족이 조상으로 후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 하게 된다. 기원 전 천년전에 유대민족은 왕국을 건설 기원전 7세기에 앗시리아에게 통치 이후 재건 기원후 1세기에 로마제국에 멸망, 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유럽 각국으로 흩어진다 .이후 2000년간 유대민족은 유럽각지에서 멸시를 받으며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중세 유럽암흑기에는 페스트가 창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때 교황청에서 신의 저주라며 악마를 제거 노여움을 풀어야 한다고 하여 유대인들이 대거 학살되고 마녀사냥이 한참일때 1차대상은 유대인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전까지 악마와 동일시 되었던 유태민족은 기독교의 시각으로 예수를 팔아먹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저주받은 민족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14세기경 팔레스타인 지역은 오스만 터키에 의해 정복과 동맹으로 세력을 넓혀질 때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놓여진다. 이 당시에는 같은 종교 이슬람의 가치아래 타민족이 지배한다는 이질감이 돌출 되나 [외세]의 탄압 같은 민족감정은 수그러지다가 실체적인 [외세]의 입김을 맛보는 것은 기독교세력인 서구의 유럽열강, 즉 식민주의자들인 대영제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의 세력 팽창시기인 18세기이다. 중동 전지역은 이들의 세력전 판도에 놓여진다. 이후 제1차 대전중에 대영제국은 주측국에 가담한 오스만 터키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당시 시대사조인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태동한 아랍민족주의자중 아라비아반도 이슬람 성지인 [메카]의 유럽 부족장인 후세인과 손을 잡고 反오스만제국인 아랍의 봉기를 부추긴다.1차대전의 종식과 함께 오스만 터키는 현재의 터키로 축소되고, 대영제국은 주축 국에 가담한 오스만 터키의 견제를 위해 후세인의 아들 파이잘을 페시리아 왕국(현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남부 터키)의 왕으로 옹립했다가 아랍민족자들이 주축이 된 정부가 급격히 결속, 대두되자 다시 옹립한 파이잘 왕을 추방하고 아랍민족이 뭉친[패르시아왕국]구상을 백지화 한다. 이후 대영제국은 프랑스와 협정을 맺어 이 지역을 분할 통치한다. 레바논 시리아 지역은 프랑스의 위임 통치령이 되었고, 당시 이집트를 보호령으로 삼고있던 대영제국은 [수에즈]운하의 권익을 지키는 발판으로 오일로드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을 점령, 통치령으로 삼는다.
이런 서구 식민주의자들의 세력에 편승한 것이 유태인들이었다. 제정러시아 및 동구지역 국가에서 유태인 배척이 심화되자 정치운동으로 시작된 시오니즘운동은 [예루살렘의 동산인 시온으로 돌아가자]라는 유태교에서 유래하는 구절을 덧붙여 종교적인 지주운동같은 체재를 갖추고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유태인들의"하나님의 선택한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으로 팔레스타인에 품고있는 종교적 애착심에 호소한다.
세계의 화약고, 팔레스타인
유태 시온주의자들의 국가건설의 역사적 정당성의 근거는 [구약성서 출애급기]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바로 현재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우며 도화선이 되는 팔레스타인이다. 구약성서 기록에 지금부터 2천년 전 로마군에 쫓겨난 유태인들이 다시 2천년 전 연고를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정당성으로 따진다면 팔레스타인의 조상인 가나안人은 4천년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다. 191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강점했을 때 이 지역의 인구는 70만이었으면 유태인은 고작 5만6천명이었다. 나치스 히틀러에 의한 박해와 대 학살로 이어지고 유태인의 대량 이주가 두들어 진다.
아랍민족은 세계1차대전시에 주축 국에 대항하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피를 흘린다. 이때 연합군에 동참을 위해 대영제국은 아랍민족에게 민족국가건설을 약속하고, 유태인에게는 [민족적 고향]을 건설한다는 이중약속을 한 것이다. 이후 이 지역에서 反식민주의 운동이 활발해지자 위임통치를 하던 대영제국은 1947년 유엔총회에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상정, 유태국가가 인정되고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자 이스라엘 건국을 공포한다.
당시 세계정치를 주름잡던 각국의 흩어져있던 유태인들과 식민주의자들이 연출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비리였고 약소민족인 아랍은 총을 든다. 이것이 이후 40여 년 간 반복되는 아랍과[외세]간의 중동분쟁의 시발점이다. 이후 4백만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유랑민이 유랑의 길에 오른다. 아랍각국이 팔레스타인을 돕는 것은 이슬람역사속에 형제애를 이어지는 전통이며, 아랍의 대의이다. 이스라엘 건국이란 아랍인의 눈으로는 서구강대국과 유태인의 침략이었고 특히 제멋대로 분할된 아랍각국의 국경선은 식민주의 제국주의자들의 이기의 소산이었다.
아랍국가는 근대국가의 국경개념보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하여 이슬람을 신앙하는 문화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서구주의에 의한 일방적인 국경선 긋기는 10년 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도발한 걸프전과 같이 아랍 형제국 싸움의 불씨가 된다. 당시 2000년 살던 땅을 버리게 하고 팔레스타인 난민을 만든 주인공은 이번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평화의 수호자로 자처하며 미국과 함께 선발대로 동참한 "영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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