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용 교수의 {이슬람 세계의 이해}
 
이슬람 바로알기 (3) 이슬람 세계, 갈등의 배경
(01/11/09 17:27:38)
 
세계의 화약고. 이슬람 세게

이번 보복공격을 시작하며 미 부시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의 내용중 미국은 이슬람 세계와의 전쟁을 하는것 이 아니라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테러이즘과의 전쟁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민초들은 이 말을 수긍하지않는 다. 이 전쟁은 단절된 동기의 전쟁이 아닌 그동안 반복되어 온 미국과 이슬람 세계와의 뿌리깊은 갈등의 역사가 역전 재역전 공격과 반격으로 내제 되어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서구열강들의 대 中東의 태도와 정책은 중동지역 국가들의 내적 양상과 함께 변모되기 시작한다. 즉, 대영제국의 쇠퇴와 함께 영향력이 약화되는 동시에 이 지역의 패권은 자본주의의 선봉 미국의 거대자본을 투입한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진출해 세계석유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1970년까지의 주요 석유회사들은 중동석유에서 순이익 55%, 자기 자본이익 11%등 66%을 자기 몫으로 챙기고도 또한 석유조업비 명목으로 18%를 뺀 16%를 겨우 산유국들에게 돌려주는 등의 폭리를 취하며 생산에서 원유 수송 시장판매에 이르기까지 국제석유시장을 멋대로 유린했다.
한편 소련도 전세계 적화운동의 교두보로 전략적 가치가 높은 이 지역을 노리다가 1956년 이집트의 아스완댐 건설공사에 투자, 원조를 지원해 침투하였다. 소련은 특히 중동지역이 서구열강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배경과 반 서구감정을 이용한 것이며, 중동지역 국가들이 식민지 제국주의의 자본주의 반동으로 정치적 이념의 노예가 아닌 친소련노선으로 기울게된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아랍의 독자노선의 역사적 맥인 아랍민족주의 분출을 예고하는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중동분쟁은 계속 이어진다. 독립 혁명 민족 대립등의 주제가 되는 분쟁요인의 상당한 부분이 동 서양진영의 대리전쟁과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이며, 세계의 화약고란 이 동서 진영에 각각 도화선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제 1차 중동전 이후 열강들의 견제로 잠정적인 휴전이 1956년 재발, 제 2차 중동전이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권을 둘러싸고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합세하여 수에즈운하지대까지 진출한다. 1967년 제 3차 중동전이 다시 기습적인 이스라엘 선공으로 시작, 아랍연합국은 다시 참패하고 이스라엘은 휴전선을 허물고 시나이반도까지 점령, 수에즈운하까지 진격했고, 요르단강 서안지대를 장악, 시리아 콰트라 고원지대까지 점령한다. 전쟁때 마다 이스라엘의 최대 후원자는 미국이었다. 미국의 정계 경제계를 주름잡는 인물들, 그들의 종교는 무엇인가? 이와같이 몇 차례 분쟁을 겪으며 아랍제국은 친 서구적 정부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며 중립외교정책 노선으로 전환되며, 외부세력의 반동으로 아랍민족내의 대동단결을 꾀하는 아랍통합운동이 전개된다. 이집트와 시리아 합병, 아랍연합공화국 창립, 식민세력이 옹호하는 왕정국가를 뒤집은 공화정수립등 내란이 속출한다. 이런 와중에도 각 중동국가의 핵심노선은 아랍민족주의의 자원국유화 작업이 병행된다.
1973년 10월 제 4차 중동전이 재발되었다.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선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3차전에서 이스라엘에 뺏긴 시나이반도를 탈환하고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협정을 맺는다. 켐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후 이집트는 아랍민족의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고립되며, 사다트는 전 아랍민족의 규탄과 비난을 받고 저격, 피살되면서 아랍민족은 다시 영웅을 배출한다. 저격범[이스탐블리]는 이슬람 세계의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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